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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박히는 명언

노벨상

노벨상

 

알프레드 노벨

스웨덴의 화학자, 발명가, 기술자, 기업인, 자선가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노벨상이 만들어지는 시초가 된 인물로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경제학상, 물리학상, 문학상, 생리·의학상, 화학상, 평화상

스웨덴 한림원에서 매년 발표 한다 예외적으로 노벨위원회 회원중 미투에 휘말려 매년이 아닌 다음년에 두명이 수상하기도 한다.

 

세계 3대  상 (맨부커 상, 콩쿠르 상, 노벨상)

맨부커 상, 콩쿠르 상 작품에 수여

 

한강(韓江, 19701127~ )은 대한민국의 작가이다. 1993년 시인으로, 1994년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출판업계에 종사하다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가 되어 후진 양성 활동도 하였다.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소설문학상',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9'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고 20165월에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했다.

 

노벨 문학상 > 작가에게 수여!

 

역사학자인 2대 수상자 몸젠이나 철학자인 베르그송과 러셀이 받은 적도 있어 인문학상 요소도 가지고 있다. 1953년 윈스턴 처칠 이후 소설가, 시인들이 독점하다[2] 2015년 벨라루스의 논픽션 작가 알렉시예비치가 수상하면서 반세기만에 다른 장르의 수상자가 나왔다. 2016년에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이 깜짝 수상하여 오랜만에 비 작가가 수상하게 되었다. 밥 딜런의 수상을 계기로 초창기처럼 스펙트럼이 넓어지지 않겠냐는 예상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노벨문학상은 작품성도 고려되지만 당시 시대 상황 등 작품 외적 요소도 많이 고려된다. 좀 거칠게 표현해서 2차 대전 이후로는 문학성 이전에 자국 정부에 비판적 성향인 작가들에게 유리한 상인데, 반대로 해석하면 보수성향 작가들은 아무리 글 잘쓰고 세계적으로 유명해도 받기 힘들다는 소리다. 일례로 수상을 거부한 바 있는 사르트르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었고, 94년 수상자인 오에는 핵무기 반대 운동을 펼쳤었다. 반면 아르헨티나의 중도우파 작가이자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를 두둔한 보르헤스, 베트남전을 옹호한 반공주의자 나보코프는 끝내 타지 못하고 죽었다. 이 때문에 극우파로서 사회활동을 하던 미시마 유키오도 할복자살을 하지 않았더라도 노벨문학상을 타기는 조금 힘들었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3]

 

주의해야 할 것은 노벨문학상은 작가에게 주는 상[4]이지 특정 작품에 주는 상이 아니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심사평마다 수상 작가의 문학적 업적을 논하는 과정에서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작품들이 있긴 하다. 예를 들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과학분야와는 달리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고도 자의적으로 수상을 받지 않은 사르트르 같은 케이스도 있다. 이는 문예가 수치화할 수 있는 과학 분야와 달라 공로를 판가름하고 서열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노벨상

 

1. 개요[편집]

(유산에서 발생하는) 이자는 다섯 등분하여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화학 분야에서 중요한 발견이나 개발을 한 사람,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 문학 분야에서 이상주의적인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 국가간의 우호와 군대의 폐지 또는 삭감과 평화 회의의 개최 혹은 추진을 위해 가장 헌신한 사람에게 준다.

-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 .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물리학, 화학, 경제학), 스웨덴 아카데미 (문학),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생리학/의학), 노르웨이 노벨위원회(평화)에서 매년 인류의 문명 발달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만들어졌다.

 

2. 역사[편집]

일설에는 1888년 알프레드 노벨의 형인 루드비그 노벨(Ludvig Emmanuel Nobel/Лю́двиг Эммануи́лович Нобе́ль)[4]이 사망했을 때 한 신문에서 실수로 알프레드 노벨이 사망했다고 기사를 실었는데, 그 기사에 노벨을 '죽음의 상인'이라 지칭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노벨이 자신의 사후 이미지를 걱정해 상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해당 오보의 원본이 발견된 바 없으며, 심지어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 등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언급, 인용한 바 없어서 잘못 알려진 풍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다이너마이트가 군사적으로 이용되는 걸 회의감을 느꼈던 노벨은[5] 후에 유언으로 유산의 94%(440만 달러[6])를 기부, 노벨상을 설립하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알프레드 노벨의 재산을 대부분 기부하려하자, 자기들의 몫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그의 친척들[7]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게다가 노벨은 유언장에서 국적에 상관없이 이 상을 줄 것을 당부했는데, 이것 때문에 세기말의 국수주의에 휩싸여있던 스웨덴 내 여론과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2세까지도 노벨을 비난했다. 특히 평화상 수상을 당시 스웨덴의 지배하에 있었던 노르웨이에 맡겼던 것도 이를 부채질했다. 그러나 유언 집행인 랑나르 솔만(Ragnar Sohlman,1870~1948)의 결단으로 노벨의 재산은 안전한 유가증권으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노벨상의 위상을 생각하면 별 탈없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탄생된 상이다. 솔만은 상을 제정하며 가진 인터뷰에서 '욕을 그리 많이 먹어보는 것도 재미있더군요.'라며 노벨의 친척들이 벌인 온갖 방해공작이나 욕설, 명예훼손을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다만 노벨경제학상의 경우 1968, 즉 노벨상이 제정되고 난 뒤로도 한참 후에 노벨의 유언과는 무관하게 따로 생긴 상이다. 스웨덴 중앙은행[8]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상으로서, 상의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학 분야의 스웨덴 중앙은행상'(The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이다.[9] 노벨의 유언에 의해 제정된 나머지 5개 분야 노벨상은 정식 명칭은 Nobel Prize[10]로 시작되는 데 반해, 노벨경제학상은 The Sveriges Riksbank Prize로 시작된다.

 

, 노벨경제학상은 진짜 노벨상은 아니고 노벨 기념상이다. 하지만 경제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는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곳이며, 수상식에 다른 분야의 수상자들과 함께 참석하고 상금 또한 동일하다. 스웨덴에서 달리 할 이유가 없기 때문.[11] 그래서 일반적으로 노벨상이라고 하면 이 경제학상도 포함되는 편이다. 하지만 알프레드 노벨의 형의 후손인 피터 노벨은 노벨경제학상에 대해 크게 부정적으로, 경제학상에 무단으로 붙인 '노벨'이라는 이름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주식 옵션 투기를 조장하는 시카고학파들이 상을 휩쓸고 있다며, 인류에 공헌한 사람에게 상을 수여한다는 노벨의 취지를 크게 벗어났다고 비판하고 있다.

 

노벨상 시상 초기에는 지금처럼 권위 있게 여겨지지 않았지만, 곧 세계적인 명성을 갖춘 상이 되었다. 이는 상의 수준을 높여가려는 지속적인 노력에 힘입은 결과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명언 등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눌러주십시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hVHbVrzt7pDYuaa9aI7jwCu-PoW1V2a6